'세종대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12.25 훈민정음과 해례본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훈민정음 해례본.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훈민정음의 창제원리가 밝혀졌다.

 

 

누가 언제 어떤 원리로 왜 만들었는지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 한글

올해(2011년)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65주년이 된다. 반만년 우리 문화유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손꼽으라면 단연 선두가 ‘한글’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어떤 창제원리에 의해 제작하였는지 알려진 문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1943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송 전형필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알지 못했다. 창제시 “고전(古篆, 옛글)을 모방했다.”는 말에 따라 여러 학설이 있었는데 인도 구자라트 문자나 산스크리스트어, 몽골의 파스파문자, 갑골문자를 모방했다는 설부터 문고리나 창살모양을 본 땄다는 설까지 분분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와 태극,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음이 밝혀졌다. 첫음(자음)이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 떴으며 가운데 소리(모음)는 하늘‧땅‧사람을 뜻하는 천지인을 바탕으로 했다. 점 하나와 선 2개로 모든 모음을 표시했다. 가장 간단한 것으로 매우 복잡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가히 천재적인 업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일화를 살펴보면, 간송은 안동에서 해례본이 출현했다고 달려가는 책거간을 불러 당시 큰 기와집 11채 값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간송은 이 땅에 보존할 가치 있는 문화재를 보면 아낌없이 재산을 쏟았으며 제 값을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1942년 10월 조선어학회사건을 일으켜 우리 한글 학자들을 일거에 체포한 일제의 손에 들어갔다면 이 해례본이 국내에 남아 있었을지 알 수없다. 간송은 6‧25 당시 이 책 한 권만은 챙겨 피난길에 올랐다고 전한다.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이 그대로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실록> 세종28년(1446) 9월 29일자에 나타난 당시 예조판서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을 보면 세종임금이 백성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 했고 “바람소리, 학의 울음, 닭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가 있다”고 하였다. 한글의 우수성이기도 하지만 백성이 막힘없이 쓸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그대로 베어 나온다.

또한 훈민정음으로써 송사(訟事)를 판단하게 하여 각종 행정조치나 형벌에서 글을 몰라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하려 했다. 집현전 학자 여덟 명에게 새로 만든 목적과 원리 그리고 글꼴을 결합하여 표기한 방법을 설명하는 해례본을 지은 이유도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당대에 문자를 새로 만들고 이를 쓸 가난한 백성의 사정까지 두루 살펴 편이하게 하려는 노력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어떤 덕성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준다.

 

언문, 아랫글 등으로 외면당하던 훈민정음, 한글로 다시 태어나다

그러나 창제당시부터 최만리 등 수많은 유학자들의 격렬한 반대 상소를 받았고 철저하게 외면당해 아랫글, 언문, 언서(諺書), 반절, 암굴 등으로 불렸다. 반포 450년인 갑오경장(1894~1896)이 되어서야 비로소 국문으로 정식 인정받았고 1913년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한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글날은 1926년 국어학자들의 단체인 조선어연구회가 주동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맞아 제 1회 ‘가갸날’을 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면서 ‘한글날’로 불렀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어 정인지가 9월 상한에 반포했다는 글을 근거로 상순의 끝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했다.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 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했다.

 

세계적인 석학이 극찬하는 한글, 그 가치를 다시 제대로 알아야

미국 시카고 대학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맥콜리(J.McCawley) 교수는 “세계 언어학계가 한글날을 찬양하고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이라 했고 유명한 동아시아 역사가인 하버드대학 라이샤워(O.Reichaurer)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인들은 전적으로 독창적이고 놀라운 음소문자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라고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석학이 찬양하는 한글이 막상 우리나라에서 점점 냉대를 받는 분위기 이다. 한글날은 1990년 법정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고 2006년부터 법정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되어 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이제는 영어에 밀려 푸대접 받고 있는 형편이다. 관공서 기관명,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까지 영문명을 선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20대에 조선에서 손꼽히는 거부가 된 청년시절의 간송 전형필


출처 : 간송 전형필이 지킨 위대한 문화유산 ‘훈민정음 해례본’
참조 : 국보를 지켜 독립한 조국을 준비하다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 간송 전형필 선생)


해례본의 의의는 훈민정음의 제작원리를 담고 있어서 글자를 모방한 것이 아닌 창조했다는 증거입니다.
(해례본 발견전까지는 글자의 원형에 대해서 여러 가설이 있었지만..... "진짜가 나타났다!")

국보70호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당시 서울에 있는 기와집 10채가격을 주고 구입해서
6.25때 이 한권만 들고 피난가셨다는 얘기로 유명합니다.

현존하는 해례본은 2본이 있습니다.

안동본 (국보70호) >> 1940년 알려짐
http://www.kookhak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298

상주본 (절도를 당해서 당시 세간에 알려졌죠) >> 2008년 알려짐

둘 다 같은 목판의 책이지만 각각 다른 가문의 고서였다가 세상에 나왔죠.

 

 

상주본의 도난품설.

 

2008년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왼쪽)과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70호 기존 해례본(오른쪽). 

 


http://www.newsplus.kr/news/articleView.html?idxno=2105
2008년 상주에 거주하는 고서적상 A씨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훔쳐갔다며 B씨를 고소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죠.
올해 6월 대법원은 A씨의 소유를 인정하고 반환하라고 했지만 B씨는 거부하는 중이랍니다.

국보급 훈민정음 해례본.원주인에게 돌려줘라!;;; [2011년06월10일]
8일 대법원 판결 확정...소유주 배씨 판결 불복 반환 거부 말썽...관계기관 배씨 다각도로 압박...


버티는 절도범… 훈민정음 상주본, 해외밀반출(해례본 중 상주에서 발견된 목판본) 못막나 [2012.01.28 ]
2008년 7월 세상에 잠깐 공개됐던 국보급 문화재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이 종적을 감춘 지 3년 6개월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책을 갖고 있는 배모(49·경북 상주시·무직)씨가 입을 다문 채 주인에게 돌려주지도, 행방을 밝히지도 않고 있다.

대법, '훈민정음 상주본' 절도 혐의 수집상에 무죄 - 연합뉴스 2014.05.29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어디에… 동아일보 2014.06.25
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6년전 발견됐다가 행방 묘연

 

 

'우리의 유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 관련 단편 뉴스들  (0) 2019.02.28
고려시대 나한도  (0) 2014.07.12
신라 수도 서라벌 3D 재현  (0) 2013.12.20
진돗개의 조상을 찾아서  (0) 2011.09.01
Posted by Tayl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