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나한도 

 

나한을 주제로 하여 오백 점이라는 다량의 세트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고 귀중한 사례이다.

화기에 의하면 제작시기는 을미, 병신, 두 해에 걸쳐 있는데, 1235년에서 1236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전시된 9점 중 간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7점이다.

을미년 즉 1235년 제작으로 추정되는 것은 제23 천성존자, 제92수대장존자, 제125 전보장존자, 제329 원상주존자 4점이고, 병신년 즉 1236년 제작으로 생각되는 것은 제145희견존자, 제170 해군고존자, 제427 원원만존자 3점이며, 나머지 2점인 제357 의통존자, 제464 세공양존자는 명문이 남아있지 않아 확실한 제작연도를 알 수 없다.

 

화면 상단에는 나한의 차례와 존명을 나타내는 묵서가 적혀 있다.

 

 

오백나한도(제15 아대다존자), 고려13세기, 비단에 옅은색, 535x395, 국립중앙박물관

화면 우측 상단에 '제십오아대다존자第十五我多尊者'라는 묵서명이 있어, 이 나한의 차례와 존명을 알 수 있는 나한도이다. 이 나한도는 보통의 고려불화와 달리 수묵담채로 그렸다.

 

두 명의 시자에 둘러싸여 앉아있는 존자는 굽은 허리와 얼굴의 주름살에서 나이 든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법을 설하듯 움직임이 느껴지는 입술과 생각에 잠긴 눈매, 희끗한 색채의 머리카락과 턱수염, 길고 흰 눈썹은 존자의 나이와 함께 오랜 세월의 수행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나한도는 유사한 작례가 여러 점 남아 있어 이들을 함께 묶어 오백 명의 나한을 그린 오백나한도 시리즈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십대제자, 십육나한, 오백나한의 차례와 존명을 명기한 조선 후기의 의식집 [오백성중청문五百聖中請文]을 참고하면, 오백나한 중 15번째 존자는 '아대다존자'와는 전혀 다른 이름인 반면, 십육나한 중 15번째 존자는 '아벌다존자阿伐多尊者'로 기록되어 있다. 

 

표기상 약간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 나한도는 오백나한 중 15번째가 아니라 십육나한 중 15번째임을 알 수 있다.

 

십육나한의 차례와 이름은 경전에 의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으며, 경전상 15번째 나한의 이름인 '아시다존자阿氏多尊者'로 비정되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박헤원)

 

 

오백나한도(제23 천성존자) 고려1235년 비단에옅은색 597x415 일본도쿄국립박물관

'제이십삼천성존자'는 화면이 어둡게 변색되었으나 그림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나한의 머리 위에 나뭇가지가 표현되어 있어 앉은 곳은 나무 아래의 바위임을 알 수 있다.

나한의 앞에는 한 젊은 승려가 공손히 합장하고, 나한을 올려다보고 있다.

양손을 무릎 위에 포개고 앉아 승려를 내려다보는 나한의 시선에서 자애로움이 느껴진다.

나한에 비해 승려는 매우 작게 표현되어 있어 주된 인물과 부수적 인물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백나한도(제92 수대장존자) 고려1235년 비단에 옅은색 647x422 국립중앙박물관

제92 수대장존자는 V자 형태의 괴목을 등지고 둥글게 엮어 만든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손에 받쳐 든 작은 병에서는 수직으로 무언가 솟아오르고 있는데, 존자는 고개를 들어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 작품은 다른 오백나한도 작품에 비해 금니를 많이 사용하여 광배를 금니로 둘렀을 뿐 아니라 가사에도 금강저문과 당초문을 금니로 그렸다. 옷주름 역시 기본적으로는 먹선을 이용하였으나, 그에 중첩하여 금니로 선을 그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백나한도(제125 전보장존자) 고려1235년 비단에 옅은색 570x502 국립중앙박물관

제125 전보장존자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정병에서는 물줄기처럼 생긴 어떤 기운이 솟았다가 아래로 향하면서, 땅에 누워 장난을 치는 듯한 동물에게로 떨어지고 있다. 존자는 눈을 크게 뜨고 동물 쪽을 응시하며, 그 동물을 부리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짙은 피부색과 둥글게 부릅뜬 눈, 두터운 입술은 존자의 퐁모를 이국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이다.

 

이 나한은 지금까지 '진보장존자'로 소개되어 왔으나, [오백성중청문]에는 제125째 나한이 '전보장존자'로 기록되어 있고, 설제 기록된 화제 또한 '전보장존자'로 판독이 가능하다.



 

오백나한도(제145 희견존자) 고려1236년 비단에 옅은색 592x420 국립중앙박물관

 

 

 

오백나한도(제170 혜군고존자) 고려1236년 비단에 옅은색 539x377 국립중앙박물관

 

 

 

오백나한도(제329 원상주존자) 고려1235년 비단에 옅은색 590x420 일암관소장 세부

제329 원상주존자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나한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무릎을 힘주어 짚은 양팔의 근육 등에서 힘과 기운이 느껴진다.

 

나한의 시선은 화면 왼쪽 상단의 용을 향해 있으며, 눈빛으로 용을 제어하는 듯한 모습이다.

 

 

 

오백나한도(제357 의통존자) 고려1235-6년 비단에 옅은색 525x368 국립중앙박물관

 

 

 

오백나한도(제427 원원만존자) 고려1236년 비단에 옅은색 582x404 국립중앙박물관

 

 

 

오백나한도(제464 세공양존자) 고려1235-6년 비단에 옅은색 527x408 미국클리블랜드박물관

나한이 신통력으로 용을 부리는 모습은 중국의 나한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이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본은 화제 부분이 박락되어 '양존자' 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오백성중청문]과 대조하여 볼때 제464번째 나한인 세공양존자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박혜원)

 

 

빈도로존자상 고려13세기 높이420 국립중앙박물관

빈도로존자는 십육나한 중의 첫 번째 나한의 이름이다.

대좌 앞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이 나한상이 빈도로존자이며 영통사 승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통사는 왕실의 진전(眞殿)이 설치되었던 고려시대 주요 사찰 중 하나이다.

안상(眼象)이 새겨진 사각의 대좌 위에 앉은 나한은 두건을 쓰고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나한의 얼굴과 몸매는 세장하게 표현되었으며 명상에 감긴 듯 침잠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립중앙박불관 학예연구사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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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ay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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